“이혼을 해도 아이들은 여전히 우리의 애들이잖아요. 그래서 우리 아이를 위해서 대화를 하려고 내가 말을 꺼내자마자 그 놈이 내게 소리를 질렀어요. 너를 위해서 애 핑계를 대지마, 그이야기를 듣는 순간, 화가 치밀어 올랐어요. 그래서 저도 지지 않으려고 소리를 질렀죠. 너는 아빠 자격이 없다고. 그러자 그놈이 너는 엄마자격이 있는 줄 아냐고 소리를 지르더라고요.”
이혼 소송중인 남편과 자녀 문제로 대화를 하려다가 싸움만 더 커져버린 상황이다. 헌데 이런 상황이 우리의 일상생활에서 생각보다 비일비재하다. 이혼 부부 상담을 하다보면 공통점이 하나 있다. 누구라고 할 것 없이 상대 배우자에게 자신의 말만 하는 것이다. 이 순간, 대화가 아니라 그저 잡소리이고 소음일 뿐인 것을 오직 대화 당사자들만 모른다.
대화가 이렇게 한없이 망가지는 현상은 이혼 부부에게만 벌어지는 극단적인 현상이 아니다. 대화는 인관관계에서 필수 도구이다. 수없이 사용한 도구인데 사람들은 사용법을 모르는 채 사용하고 있다. 대화는 내말을 상대에게 전달하는 것이라고만 여긴다는 것이다. 더 나쁜 상황은 상대를 지적하고, 상대를 이기는 수단으로 사용하는 것이다. 하지만 대화란 상대가 듣지 않으면 아무 의미 없는 소음이다. 더 기가 막힌 것은 가장 날카로운 비수로 변질하는 것은 순식간이라는 것을 다들 한번쯤 경험했을 것이다.
그렇다면 대화의 정석은 무엇일까. 대화의 시작은 상대의 이야기를 들어줄 마음 준비라고 말하고 싶다. 제대로 들어야만 상대의 마음을 알고 거기에 답할 수 있기 때문이다. 대화를 하다가 원래 자신의 의도하고는 상관없이 싸움이 번지는 경험이 잦다면 그 근간에는 상대의 이야기를 재대로 들어주는 자세가 문제가 되는 경우가 흔하다.
우선 부부가 꼭 대화를 해야 한다고 가정을 해보자. 우선 두 사람 사이에 최소한의 대화의 규칙을 정해야 한다. 너무 머리 아프게 고민할 필요는 없다. 시간을 정해놓고 먼저 십 분이라고 허락했다면 상대의 하는 이야기를 거울처럼 반영해주는 것이다.
당신이 하고자하는 이야기는 이 말이야 하고, 말의 흐름이 끊기지 않을 정도 선에서 확인하면서 들어주는 것이다. 여기서 추가로 조심할 것이 있다. 눈빛도 몸짓도 상대를 향해 움직여야한다. 여기서 상대가 하는 말을 하는 동안 자신이 반박할 자료를 챙기고 있는 자신의 모습을 확인하였다면 단지 듣는 척을 하고 있는 것을 증명하는 것으로 상대의 이야기를 제대로 들어주고 있는 것이 아니라는 반증이다.
당연히 약속한 시간동안 상대가 하는 말을 끊어서도 안 된다. 말 그대로 온전히 들어주는 것이다. 다음 순서가 오면 다른 파트너도 똑같이 진행해야 한다. 규칙은 단순하지만 습관이 안 된 사람은 중간에 말을 자르고 자기주장을 해버린다면 다시 시작해야한다. 대화는 잘 듣는 것이 우선이 되어야 한다.
싸우려고 이기려고 대화를 했다면 대화는 싸움의 도구이다. 하지만 내 마음을 제대로 전달하는 수단으로 대화를 시작했다면 먼저 상대에 대한 존중의 표시로 들어줄 자세가 시작인 것이다. 잘 들어주어주는 것만으로도 상대는 존중받고 있다는 마음이 들기 때문에 대화에는 따뜻한 윤활유가 흐를 것이다. 잘 듣다보면 상대 입장에서는 이렇게 생각하고 있구나를 이해하게 되는 기회가 된다. 조물주가 귀는 두 개, 입은 한 개를 만든 이유가 두 배로 더 들어보라고 만들지 않았을까?
잘 들어준다는 것은 무조건 상대의 말에 순종하라는 것은 아니니 오해는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결국 상대의 이야기를 경청하는 사람이 상대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