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마음도 모르는데 어찌 상대의 마음을 알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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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마음도 모르는데 어찌 상대의 마음을 알겠는가.

  • 이말순 편집위원
  • 승인 2023.10.29 16:2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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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은 기사 내용과 무관합니다

 

그 반에는 들어가고 싶지 않아요.

그 아이는 내가 만만한 것을 알았나 봐요.

그 아이를 쳐다보고 싶지도 않아요.

그나마 내가 가장 자신 있게 하는 일은 애들을 가르치는 일인데…….”

 

조기 퇴직을 고민하는 젊은 여교사인 내담자의 하소연이다. 그놈이 있는 교실에 들어가긴 싫고, 그렇다고 빼고 들어가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고, 퇴직을 하자니 경제적인 문제도 있고, 전업주부도 자신이 없고, 자신이 가장 잘하는 일은 가르치는 일이라는데, 그놈의 눈빛을 보면 자기도 모르는 새 움츠러든다는 것이다. 교사가 학생을 무서워한다는 자체가 창피하기도 하고, 때론 수치심까지 느낀다며 숨죽여 흐느낀다.

지난 달, 방과 후 그 학생이 교실에 남아있기에 그녀는 자신의 긴 머리를 쓸어 올리면서 집에 가지 왜 안 가가고 있어라고 툭 말을 건넸다. 그러자 그 아이는 대뜸 "X, 괜히 나만 붙잡고 짜증이야"라고 대꾸하면서 얼굴을 붉히며 소리를 질렀다는 것이다순간 그녀는 가슴이 툭 부러지는 기분이 들었다. 더 이상 대꾸도 못하고 몸이 움츠러들었고, 머릿속이 하애졌다. 그 다음 그 교실에서 서둘러 도망쳐 나왔다는 것이다.

그녀는 그 순간 폭력 가정의 아빠가 떠올랐던 것이다. 그녀의 아빠는 툭하면 소리 지르고 욕하고 엄마와 자신을 무자비하게 때렸다. 그 아이가 소리를 지르는 순간에는 어엿한 교사가 아니라 숨죽이고 말 한마디 못하는 한없이 무기력한 어린 대여섯살 소녀로 변해버린 것이다. 인간의 지능은 정서적 갈등 상황에 빠지면 상황적 이해능력이 급격히 떨어지는 경우가 있다. 

그 문제의 놈을 불러다 상담을 시작했다. 그 아이는 어린 시절부터 지속적으로 가정 폭력에 노출이 된 복합트라우마 희생자였다. 선생님이 머리 위로 손이 올라간 순간 자신을 때리기 위해서 손을 들었다고 여겼다. 복합 트라우마 희생자들은 편안한 시절이 없었기에 건강한 정서를 경험하지 못했고, 오직 생존을 위해 감각이 발달되어 있다. 그저 살아남기 위해서 대응하는 것이다. 그 학생도 악마가 아니라 사실은 선생님께 사랑받고 싶은 작은 생명체였을 뿐이었다.

그녀에게 그 학생도 그녀처럼 가정 폭력의 피해자임을 알렸고, 선생님의 머리 올리는 손짓마저도 자신을 이유 없이 때렸던 부모를 떠올리게 했다는 사실 알렸더니 그녀는 또 한번의 눈물을 보였다. 그 학생의 사연이 너무 마음 아프게 다가온 것이다.

그 학생에게는 상대가 안전하다는 신호를 먼저 보내야 해요. 우선 무엇보다 부드러운 목소리는 안전하다는 1차 신호이고, 두 번째는 편안한 표정을 보여주어야 하지요. 그리고 선생님은 내 몸이 움츠려 드는 것을 먼저 알아차리고, 이제는 더 이상 작은 소녀가 아니라 어엿한 교사라는 사실을 기억해 내야해요.”

 

무작정 움츠러들었던 내 마음도 몰랐는데, 어찌 상대의 마음을 헤아릴 수 있었겠는가. 사실 알고 보면 다들 측은한 존재들이다. 어찌 아프지 않은 존재가 있으랴 만은 생각보다 상대도 나만큼 아픈 존재였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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