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형민 대한응급의학의사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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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형민 대한응급의학의사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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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23.10.2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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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간 22주년 특집
"응급실이 망하면 응급환자들은 갈 곳이 없다"

응급실은 환자의 생명을 살리는 최후의 보루이다. 그러나 그 절대적이고 숭고한 가치는 지금 사회에서 빛을 잃어가고 있고, 열정으로 현장을 지키는 많은 전문의들이 좌절과 분노와 탈진으로 응급의료현장을 외면하고 있다. 

더 큰 문제는 지금의 어려움이 시간이 지나면서 더욱 악화될 것이라는 점이다. 응급의료가 제 역할을 하지 못하면 치료가 가능할 수 있던 응급환자들이 더 많이 목숨을 잃게 될 것이고, 그에 따른 사회적 손실은 어떤 식으로도 보상되지 못할 것이다. 

응급의료체계는 국가의 필수적인 의료서비스이고 응급환자의 생명과 삶의 질을 유지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장소이다. 그렇기 때문에 대부분의 국가에서 법률과 행정적인 지원을 통하여 유기적으로 움직이는 응급의료체계를 만들어 가는 것이 선진국을 가늠하는 기준이 되기도 한다. 

그 이유는, 응급의료체계는 단지 병원과 의료자원의 문제가 아니라 119와 같은 통신, 교통, 이송, 등의 기본적인 사회 인프라와 수많은 전문인력들에 대한 유지, 보수, 교육 및 관리가 필요한 분야이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러한 엄청난 사회 시스템이 적절하게 운영되기 위해서는 막대한 재원과 지원이 필요하며, 의료법과 별도로 응급의료에 관한 법률이 있고, 보건복지부에도 응급의료과가 따로 존재하고 있는 것이다. 

응급실은 내부적으로는 26개 전문과들과 어떤 식으로든 연결되어 있다. 더불어 병원의 행정, 정보통신, 운영관리팀들과도 상호작용이 필요하다. 외부적으로는 관리행정 당국과 지도감독 기관들의 영향을 받는다. 

이러한 복잡한 관리운영 시스템과 수많은 이해 당사자 집단들은 응급실의 정책적 판단과 변화를 어렵게 만드는 복잡성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다양한 이해집단들의 요구에 부응하다 보니 응급의료발전 5개년 계획과 같은 중대한 정책을 응급의학 전문의를 빼고 시민단체나 예방의학과가 만들게 되는 촌극이 벌어지게 되는 것이다. 

연관된 사공들이 너무 많다 보니 지난 COVID-19사태와 같이 국가적인 위기상황 속에서도 응급의료에 대한 적절한 통제와 조치를 어렵게 만드는 요인들이 되기도 했다. 

결과적으로 지난 3년을 돌아보면, 가장 많은 코로나환자를 대면한 응급의료현장에 대한 어떠한 제대로 된 계획도 없었으며, 적절한 보상도 없었고 고맙다는 말조차 없었다. 향후에 다시 유행한다고 해도 똑같이 힘들 것이고 다시 많은 환자들이 죽어갈 것이다. 고생했던 응급의료진에 고맙다는 말 대신에 환자를 강제로 수용하라고 윽박지르고 받지 않으면 처벌하겠다고 법을 개정하였다. 

COVID-19판데믹을 지나면서 응급의료현장에는 정부정책과 대응에 실망하고 늘어난 업무부담과 탈진으로 많은 전문의들과 전공의들이 응급의료현장을 떠났다. 거기에 더하여 원인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해결책도 애매한 응급의료발전계획이나 필수의료 대책들은 앞으로의 기대조차 무참히 꺾어버리게 되었다. 

응급진료의 결과나 환자수용과 관련하여 의료진에 과도한 책임을 지우는 여러 법적인 판결들이 줄지어 발표되면서 이제 최선을 다해 응급진료를 하여도 한 번의 실수나 문제로 면허가 취소되고 직업을 잃게 되는 두려움 속에서 응급실의 의료진들의 이탈은 더욱 가속화되고 있다. 

가장 이상적인 응급의료체계는 언제 어디서나 가장 가까운 응급의료기관에서 동일한 양질의 응급처치를 적절한 시간 내에 받을 수 있는 것이다. 이것은 세상의 모든 국가들이 추구하는 최고의 이상이지만 현실적으로 구현한 국가는 없다. 결국은 현실적으로 100%는 불가능하더라도 몇 퍼센트의 어떤 수준의 응급의료체계를 만들어갈 것인지는 국민적 합의가 필요한 부분이 것이다. 

지금 현재의 우리나라의 응급의료체계는 투입되는 자원에 비해 200%이상 최선을 다해 가동되고 있는 상황이다. 전문의 1인당 미국에 비해 2배, 영국에 비해 3배가 넘는 응급환자를 담당하고 있으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방가능사망율이나 최종적인 치료의 결과물들은 선진국들과 비교가 안되게 높다. 

하지만 언론에 보도되는 특정 사건들은 응급의료체계가 심각한 문제가 있으며 해결을 위해서 응급의료체계에 대한 더욱 강력한 관리감독 강화를 요구하고 있다. 주어진 상황에 비해 최선을 다해서 기대이상의 결과를 내주고 있는데도, 사고가 터지면 관리감독책임은 나몰라라하고 현장의 의료진들에게 책임을 전가하여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목표를 주고 못했다고 질책하고 있는 것이다. 

응급실을 전전하고 사망하는 환자를 살리기 위해서는 너무나도 간단한 해결책이 있다. 그 환자를 최종적으로 치료해 줄 병원과 의료진들을 충분히 많이 지원하고 육성하고 인프라를 확충하면 된다. 

결국은 정부에서 충분히 돈을 내면 해결될 수 있는 문제인 것이다. 그런데 그렇게 하기에는 의료비, 보험료 상승과 정부의 많은 비용부담이 들 테니 지금 있는 병원들에서 그냥 알아서 받아서 알아서 잘 치료하라고 한다. 대신 잘하지 못하면 너희가 책임지라고 하고 있다. 당연히 달라진 것이 없기 때문에 앞으로도 비슷한 사건들은 지속적으로 일어나게 될 것이고 앞으로도 많은 환자들이 안타깝게 죽어갈 것이다. 

우리는 응급환자 진료에 투입되어야 할 응급의료인력의 이탈을 매우 안타깝게 생각한다. 가장 중요한 이유는 앞서 이야기한대로 미래가 보이지 않기 때문이며 그 미래를 바꿔줄 수 있는 것은 관리감독기관과 정부의 책임인 것이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해결은 고사하고 그 핑계로 의대정원확대라는 어이없는 결과를 내놓은 정치권에 더 이상은 할 말을 잃게 된다. 지금 있는 인력들도 그만두는데 의대정원확대로 그것을 해결하겠다는 것은 망상에 가깝다. 배고픈 사람들이 있으면 빵을 먼저 나눠줘야 하는데 농사를 더 짓자고 하는 격이다. 

응급의료에 관한 정책과 비전은 응급의료현장의 전문의들과 함께 만들어야 한다. 현장이 인정하고 이해하지 못하는 정책은 탁상행정에 불과하다. 단기적이고 문제해결을 위한 졸속대책들을 그만두고 장기적인 청사진과 비전을 공유하고 함께 국민들을 설득하고 이해시켜야 한다. 

전문가들의 전문성에 대한 존중과 이해를 바탕으로 우리를 이익집단이 아닌 파트너로 인식해주기를 바란다. 여태껏 응급의료현장을 지켜온 사람들은 응급환자의 생명을 지키기 위한 사명감과 열정으로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최선을 다해 현장을 지켜왔다. 

이제는 그 참을성의 한계가 얼마 남지 않았다고 생각된다. 최소한 지금 현재의 응급의료체계는 과밀화, 취약지 문제 등 가장 기본적인 문제들도 해결되지 못하고 있는 상황에서 어떠한 정책이나 어떠한 개편도 효과적이지 않을 것이라고 여러 차례 주장해 왔다. 무제한 병원선택의 자유와 진료권이 보장되는 우리나라의 현실에서 전 국민적인 응급실 이용문화 개선이 없이는 앞으로도 이러한 문제의 해결은 요원할 것이다. 

가장 먼저 정책당국과 관리감독기관들은 스스로의 이익이나 입장을 내려놓고 열린 마음으로 현장의 전문의들의 이야기를 경청해 주기 바란다. 최소한 응급의료수가나 과밀화, 취약지 인프라, 응급실 이용문화와 같은 기본적인 문제들을 해결하지 못한다면 그 다음 단계로 한 걸음도 나아갈 수 없을 것이다. 

응급의료체계는 그 나라의 의료체계의 수준을 나타내는 최전방이자 마지막 보루인 것이다. 응급실이 문을 닫는 그 순간이 오면 그것이 바로 우리나라 의료체계의 마지막이 될 것이다. 지금껏 당연한 듯 누려온 24시간 응급의료를 제공받을 수 없는 순간이 눈앞에 와 있다. 너무 늦지 않은 시간에 이러한 문제들을 해결되기를 간절하게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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