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대가 무조건 성실하게 사는 것이 당연한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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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가 무조건 성실하게 사는 것이 당연한 걸까?

  • 이말순 편집위원
  • 승인 2024.05.11 14:2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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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무원 정년퇴직 후 1년 정도 됐는데 요즘 왜 사는지 모르겠어요. 이젠 더 이상 상사 눈치도, 부하 직원 눈치도 볼 것이 없어 남은 인생은 정말로 좋은 일만 남은 줄 알았는데, 이젠 마누라가 저를 쓸모없다고 보는 것 같아 더 힘들어졌어요. 역시 저는 쓸모없는 존재인가 봐요.”

 

그는 재혼 가정에서 둘째로 태어났다. 부모님의 새로운 삶은 순탄치 못했다. 특히 그의 엄마는 시모와 갈등과 친정에 두고 온 자식 걱정에 이혼을 결심하고 둘째인 내담자 낙태를 시도했고, 다행인지 불행인지 죽지 않고 살아난 것이다. 재혼한 부모님의 삶이 힘들어지면서 배다른 형제와 씨가 다른 형제들은 재혼한 부모님에 대한 원망이 갈수록 심해졌지만, 그는 원망할 자격조차도 없다고 느끼면서, 잘못 태어난 자신의 삶을 원망하면서 항상 눈치를 볼 수밖에 없었다.

부모님의 삶이 고달파질수록 두 분이 재혼을 하지 않았더라면 하는 생각이 자주 들었고, 자신은 부모의 잘못된 선택의 결과로 태어난 존재로 느꼈다고 한다. 그는 부모님에게 너무 착한 아들이어야만 했고, 형제들에게는 항상 양보심이 많은 착한 동생이었다. 자신의 존재가 누가 되지 않기 위해 열심히 공부하였고, 공무원 생활을 하는 동안에도, 가정에서도 무조건 성실하게 살아왔다. 매순간 남을 배려하고, 양보하였지만 정작 자신을 위해서는 신경 쓴 적도 없이 살아왔다. ‘법이 없어도 살 사람이야’. ‘성실하고 착한 사람이야소리를 들을 정도로 열심히 살아왔다. 60대 초반을 넘어선 지금도 여태 자신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생각해본 적도 없는 내담자였다. 매 순간 주변의 눈치를 보면서 어찌할 수 없는 무력감에 빠지는 시간들이었다.

자신은 조그마한 실수도 하면 안 될 것 같고, 항상 쓸모 있는 사람이어야만 했기에 정말 열심히 살았다. 그런데, 퇴직 후에는 고정적인 할일이 사라지자 열심히 사는 것조차도 쓸모없는 것처럼 느껴져서 남 몰래 상담실을 찾아온 것이다. 그는 쓸모없는 존재감 때문에 무력감에 빠져버린 것이다.

 

이 내담자 무력감은 2차 정서로 그 속에는 수치심, 버림받음 같은 1차 부정적 정서가 있었다. 이로 인해 손상된 자기감을 갖게 되는 것이다. 손상된 자기감은 주 양육자인 부모 등 중요한 대상관계에서 외상 경험으로 생긴다. ‘나는 쓸모없는 사람이야’, ‘나는 무능해’, ‘나는 사랑받지 못해등이 대표적이다. 그는 핵심 감정에 머무는 것이 두려워 한평생을 너무 성실하게 몸부림을 쳐 온 것이다. 낙태해야하는 존재로 버림받음에 대한 감정 속에는 그 사람만의 간절한 욕구가 숨어있다. 그냥 그대로의 모습으로 인정받고 싶은 욕구, 사랑받고 싶은 욕구, 가치 있는 존재가 되고 싶은 욕구가 있는 것이다. 이 내담자에게는 숨은 욕구를 타당화 해주는 작업이 필요하다.

당신은 지금 그대로 모습으로 소중해’, ‘당신은 완전하지 않아도 사랑받을 자격이 충분해등이다. 단 한번의 상담치료로 해결되는 문제는 아니다. 상처를 준 가족이 지속적으로 있는 그대로의 상대를 받아들이고, 경험하는 것으로 건강하고 괜찮은 자기감을 갖는 것이다. 하지만 이 내담자 부모는 이미 돌아가셨다. 그분들에게서 직접 위로 받을 수는 없다. 단지 받아들이고 내려놓아야 한다. 자포자기가 아닌 내려놓음이다. 이런 경험은 상담이라는 안전한 관계를 기반으로 이를 견딜 수 있는 힘을 갖게 하는 것이다. 상담은 그 안전한 기반에서 허무감에서 머물수 있도록 돕고, 그 허무감을 통과하면서 새롭게 보이는 나의 존재를 얻는 것이다.

 

사람들은 슬플 때 기꺼이 슬퍼야 하고, 안전에 위협을 받을 때 두려움을 느껴야 하고, 위반에 대한 분노를 느껴야 적응적으로 살 수 있는 것이다. 여기서 오해하지 말 것은 소리 질러 격노하고, 분노하는 것이 아니다. 나의 신체가 느끼는 감각에 주의를 기울이고, 이를 자각하고, 상징화하여 의식하고, 새로운 의미를 창조하고 문제를 해결하거나 올바른 결정을 하도록 인도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 슬픔을 알아차리고, 머물고 이성으로 통합하는 과정을 거치는 것이다. 기꺼이 그 순간 경험하는 슬픔을 느끼고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과정을 거치는 것이다. 또한, 안전에 위협을 받으면 두려움을 느끼고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것이다.

우리의 감정에는 아이러니한 순간이 있다. 불편하다고 피하면 그 순간을 벗어날 수가 없다. 불편한 감정을 만나야 거기서 벗어날 수 있다. 그리고 그 불편한 감정을 감당할 수 있음을 경험하면서 세상을 회피하는 것이 아니라 행동하는 삶을 살아가는 것이다.

그는 누군가를 위해서 열심히 살아갈 필요가 없었다. 그 순간 그는 자신의 존재감을 잃은 것이다. 그 사람이 알아야 할 진실은 열심히 잘해야 소중한 사람으로 인정받는 것이 아니다. 열심히 노력해야만 가치 있는 존재가 아니다. 지금 있는 그대로 충분히 소중하고 가치있는 사람이라는 사실이 진실이다. 인간은 완벽함을 입증해야하는 존재가 아니다. 우린 신이 아닌 부족한 인간이기에 그 생명으로 충분히 귀하고 소중한 존재인 것이다. 인간 자체는 그 누구에게 버림받을 존재가 아닌 그 자체 하나만으로 하나의 우주인 탓이다.

당신이 지금 무조건 열심히 살고 있다면 반문해봐야 한다. 내가 진심으로 원하는 것인지, 누군가에게 보여주기 위함인지, 이미 당신은 충분히 소중하고 가치 있는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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